핵심 직원이 경쟁사로 떠났다면 그때부터가 법적 싸움의 시작입니다
#영업비밀·부정경쟁분쟁
#칼럼

오랫동안 영업을 담당하던 핵심 직원이 갑자기 퇴사했습니다. 몇 주 뒤, 그 직원이 동종 경쟁사에
합류했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오랜 거래처 몇 곳에서 계약 해지 통보가
들어옵니다. 우연이라고 보기에는 시점이 너무 딱 들어맞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대표들이 비슷한 반응을 보입니다. "우리 거래처 명단과 견적 구조를
다 알고 있는데, 이게 불법 아닌가요?" 결론부터 말하면, 불법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 경계를 가르는 것이 바로 '영업비밀'이라는 법적 개념이고, 이것을 사전에
어떻게 관리해 두었느냐에 따라 법적 대응 가능 여부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부정경쟁방지법)은 영업비밀을
"공공연히 알려져 있지 아니하고 독립된 경제적 가치를 가지는 것으로서, 비밀로 관리된
생산방법, 판매방법, 그 밖에 영업활동에 유용한 기술상 또는 경영상의 정보"로 정의합니다.
실무상으로는 세 가지 요건이 핵심입니다.
비공지성은 해당 정보가 일반에 알려져 있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인터넷이나 논문에 없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역설계 등을 통해 상당한 비용이나 노력 없이 알 수 없어야 합니다. 최근 판례는 개별 정보가 공지되었더라도 이를 조합한 전체 시스템이나 프로세스가 독자성을 갖는다면 비공지성을 인정하는 추세입니다.
경제적 유용성은 해당 정보가 경쟁사보다 우위를 점하거나 개발 비용을 절감하는 데 실질적 가치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거래처 리스트, 단가 구조, 핵심 기술 파라미터 등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비밀관리성은 실무에서 분쟁이 가장 많이 갈리는 요건입니다. 비공지성·경제적 유용성과 달리 비밀관리성은 정보 자체의 성격이 아니라 보유 주체의 행위를 요구하므로, 충분한 비밀관리조치가 없었던 정보는 일반에 알려져 있지 않고 경제성이 높아도 영업비밀로 보호받지 못할 우려가 있습니다.
현장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오해가 있습니다. "우리 회사 자료인데 당연히 비밀 아닌가요?"
법원은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실제 판결을 보면 이 점이 명확해집니다.
보청기 수입·판매 회사의 임원이 퇴사 후 경쟁사로 이직하면서 전 직장의 매출·재무 자료를
해외 공급사에 전송한 사건에서, 법원은 회사가 해당 자료에 비밀번호를 설정하거나 접근을
제한하는 등 객관적인 비밀유지 노력을 하지 않은 점을 근거로 영업비밀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반면 판례는 중소기업인 원고가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직원을 소수로 제한하고, 패스워드를
설정하고, 취업규칙에 비밀유지 의무를 부과했다면 그 정보는 비밀로 유지·관리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결국 같은 정보라도 회사가 어떻게 관리했느냐에 따라 법적 보호 여부가 달라집니다.
문이 열려 있었는지, 잠겨 있었는지의 차이입니다.
많은 기업이 입사 시 "퇴직 후 일정 기간 동종 업계에 취업하지 않겠다"는 전직금지약정을
받아둡니다. 이 약정은 분명 유효한 수단이지만, 무조건 효력이 인정되지는 않습니다.
전직금지 기간이 3년에 달하는 등 약정 자체가 민법 제103조(반사회질서의 법률행위)에
위배될 경우 무효로 판단될 수 있습니다. 법원은 전직금지의 기간, 지역, 직종, 그리고 회사가
보호하려는 이익이 실질적으로 존재하는지를 종합적으로 따집니다.
전직금지 약정이 없는 경우에도, 부정경쟁방지법 제10조 제1항에 따라 근로자가 전직한
회사에서 영업비밀과 관련된 업무에 종사하는 것을 금지하지 않고서는 회사의 영업비밀을
보호할 수 없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가처분 신청이 인용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다만 이 경우에도 영업비밀의 존재와 유출 가능성에 대한 소명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영업비밀 침해가 인정되는 경우, 회사는 복수의 수단을 동시에 활용할 수 있습니다.
부정경쟁방지법 위반을 이유로 형사 고소, 전직금지 가처분 신청, 본안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형사 고소는 단순한 처벌 요청이 아니라, 수사기관의 계좌 추적과
압수수색을 통해 회사가 자체적으로 확보하기 어려운 증거를 드러내는 효과도 있습니다.
처벌 수준도 가볍지 않습니다. 현행법상 회사의 영업비밀을 다루는 직원이 기밀 사항을 외부로
반출하면 최대 15년 이하의 징역 혹은 15억 원 이하의 벌금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손해배상 측면에서도 변화가 있었습니다. 2024년 개정 부정경쟁방지법은 징벌적 손해배상 한도를
5배로 상향하고, 공소시효를 10년으로 연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침해 사실이 인정되면 실제 피해액의 수배에 달하는 배상이 가능해진 것입니다.
또한 영업비밀의 취득, 사용, 누설은 각각 독립된 범죄이며, 함께 정보를 공유하기로 공모한 자들
사이에서 정보를 넘겨주는 경우 주는 자에게는 누설죄가, 받는 자에게는 취득죄가 각각 성립
합니다. 이직을 시켜주겠다며 경쟁사 직원을 회유해 자료를 빼낸 회사 임원에게 실형이 선고된
사례도 있습니다.
| 상황 | 법적 쟁점 | 확인이 필요한 사항 |
| 퇴직자가 경쟁사로 이직 | 영업비밀 침해, 전직금지 위반 | 비밀유지·전직금지 약정 체결 여부 |
| 거래처 정보 유출 의심 |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 접근 제한·패스워드 등 비밀관리 조치 여부 |
| 기술·제조 정보 유출 | 영업비밀 침해, 업무상 배임 | 자료 접근 이력, 퇴직 전 반출 흔적 |
| 전직금지 약정 있음 | 약정 효력 범위 | 기간·직종·지역 범위의 합리성 |
| 경쟁사 출신 직원 채용 | 역방향 침해 리스크 | 이전 직장 자료 반입·사용 여부 점검 |
특허청 통계에 의하면 국내 기업의 영업비밀 유출 사례 중 퇴사자에 의한 유출이 절반 이상을
차지합니다. 그럼에도 많은 기업이 "설마 우리 직원이"라는 생각으로 사전 대비를 미룹니다.
영업비밀 분쟁에서 회사가 패소하는 가장 흔한 이유는 기술이나 정보가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그것을 비밀로 관리하지 않았다는 이유입니다. 자료에 패스워드를 걸고, 접근 권한을 제한하고,
비밀유지 서약을 받아두는 것이 소송에서 이기는 출발점입니다.